여러 종교의 장례를 치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많은 분들이 특정 종교의 예법에만 한정되지 않고, 말이나 행동을 통해 그 어떤 것을 위해 기도 혹은 기원한다는 점입니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리만의 독특한 내재적 염원이라고 보입니다. 무속이라고 하면 우린 막연히 무당의 행위만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왜 그런지 짧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 글은 미신을 옹호하고 무속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철학적 접근도 아니고 학문적인 접근도 아닌, 매우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혀둡니다.
유교는 조선 시대의 국가 통치 이념이자 원동력이었습니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국가 근본으로 삼았지만 그 이면에는 도교와 불교, 무속 신앙인 무교(巫敎)의 영향이 크게 성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적으로는 불교와 함께 탄압받았지만, 사적으로는 일반 민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생활 종교로서 그리고 유불선의 혼합 종교로서 우리와 함께 해왔습니다.
늘 그렇듯이 재화초복(재앙을 없애고 복을 빌어주는 행위)은 인간의 요구에 신의 응답을 구하는 형태의 제례로 생활철학과 결합된 토속적이며 민속적인 샤머니즘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고, 신의 가호와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기도, 그리고 생사화복을 가져다주는 제사는 무신앙에서 유래한 것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이러한 인간의 행위는 오늘날 우리의 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져옵니다. '좋은 날 잡아 이사하자', '실타래와 함께 북어를 걸어놔라', '좋은 날 잡아 묘를 이장하자', '올해는 삼재가 있네', '밤에 휘파람 불지 말아라', '밤에 손톱 깎지 말아라', '문지방 밟고 다니지 마라', '문 앞을 깨끗이 정리하자'... 등등 우리 생활에 많은 유불선의 혼합 형태의 생활종교로 무(巫) 신앙의 흔적을 가져옵니다. 어른들께서 가끔 이렇게 말씀들 하십니다. '이거 이렇게 해라', '이런 거 하지 말아라'라고요. 재화초복의 방편이자 생활의 지혜인 것이지요. 어른 말씀 들어 손해 보는 것 없습니다.
이른 새벽에 길은 맑은 정안수(정화수) 한 그릇을 장독대 위에 올려두고, 멀리 떠난 자식의 건강과 무사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볼까요? 그 애틋한 치성으로 드리는 기도가 단지 종교의 일환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좁은 소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모두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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